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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렌즈
카메라 렌즈는 사람의 눈보다 미숙하다. 카메라 렌즈는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기록할 뿐, 크기와 거리를 지능적으로 인식해 조정하지는 않는다. 카메라 렌즈 가까이 있는 물체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와 관계없이 멀리 있는 것보다 무조건 크게 보인다. 예를 들어 커피잔은 카메라 렌즈의 바로 앞에 있고 사람은 롱 쇼트 거리에 있는 경우, 사람보다 커피잔이 훨씬 더 커 보이며 동시에 사람을 완전히 가려버릴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감독들은 영상에 최대한 충격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촬영 과정 자체를 왜곡하기도 한다.
렌즈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지만, 크게 ‘표준렌즈(왜곡 없는 렌즈)’와 ‘망원렌즈’, ‘광각렌즈’의 3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사실주의 감독들은 왜곡의 최소화를 위해 주로 ‘표준렌즈(normal lens)’를 사용한다. 표준렌즈로 촬영된 피사체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과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형식주의 감독들은 어떠한 특성을 강조하거나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렌즈와 필터를 자주 사용하며, 특수 광학 조절 장치를 사용해 형상과 색, 조명의 밝기 등을 완전히 바꾸기도 한다.
‘망원렌즈(telephoto lens)’는 이름처럼 망원경 같은 역할을 하며, 초점거리가 길어 ‘롱 렌즈’로도 불린다. 따라서 대상을 아주 먼 거리에서부터 클로즈업할 때 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를 찍는 경우, 촬영 기사는 사자의 클로즈업 영상을 촬영할 때 표준렌즈를 사용해 사자에게 직접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망원렌즈를 사용해 필요한 클로즈업을 만들어낸다. 이뿐만 아니라 망원렌즈는 복잡한 도심에서 야외촬영을 할 때, 촬영기사가 신중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카메라를 향한 행인들의 아이 콘택트를 방지하기 위해 촬영기사가 차 안에 숨어 차창을 통해 망원렌즈로 클로즈 쇼트를 찍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일부 감독들은 종종 상징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부수적인 효과를 만드는 데 용이한 망원렌즈를 사용한다. 대부분의 망원렌즈는 한 지점에만 초점이 정확하게 맞아, 그 지점의 앞이나 뒤에 놓인 대상은 초점이 흐리거나 초점을 벗어나는데 특히 형식주의 감독들이 이를 자주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결정적인 장면에서 배우의 표정 연기를 강조하려는 경우, 아주 미세한 부분에만 정확히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망원렌즈를 이용해 배경은 물론 배우의 얼굴 외 다른 부분까지 흐리게 만들어 관객의 시선이 불가피하게 배우의 얼굴만을 주목하도록 할 수 있다. 한편 렌즈는 초점거리가 길어질수록 거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는데, 렌즈의 초점거리가 극단적으로 긴 경우, 선택된 초점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초점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감독들은 이렇게 배경이나 전경, 혹은 이 모두를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만들어 새로운 효과나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망원렌즈의 초점거리는 촬영 중에도 조정이 가능하여 감독은 한 시퀀스 내에서도 관객의 시선을 다양한 거리로 인도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은 ‘이동 초점(rack focusing)’ 또는 ‘선택적 초점(selective focusing)’이라고 한다. 일례로 마이크 니콜스(Mike Nichols)의 ‘졸업(The Graduate)’이라는 작품을 보면, 감독은 관객에게 여자 주인공을 먼저 보여주고, 그녀가 초점에서 멀어진 뒤 조금 떨어진 출입구 앞에 서 있는 주인공의 어머니를 보여준다. 이처럼 초점을 미세하게 변화시키는 기술은 인과관계를 암시하는 데 용이하다. 또 윌리엄 프리드킨(William Friedkin)의 ‘프렌치 커넥션(The French Connection)’에서 역시 감독은 감시당하는 범죄자를 보여주는 시퀀스에서 선택적 초점을 사용한다. 범죄자 주위에 있는 도시의 군중들은 구별하기도 힘들 정도로 흐릿하지만, 범죄자에게는 계속해서 정확한 초점이 잡힌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프리드킨은 그 초점을 범죄자에서 그를 미행 중인 형사에게로 이동시킨다.
망원렌즈는 영상을 평평하게 만들어, 심도를 보여주는 면들 사이의 거리감을 감소시키기도 한다. 즉 망원렌즈로 촬영하면 실제로는 몇 미터나 떨어진 두 사람을 불과 몇 센티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또 아주 긴 망원렌즈는 떨어진 면들을 지나치게 압축해 영상을 마치 추상적인 패턴의 평평한 표면처럼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쇼트에서는 대상이 카메라와 가까워지거나 멀어져도 그 움직이는 대상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초점거리는 짧고 시야는 넓은 ‘광각렌즈(wide-angle)’는 ‘쇼트 렌즈(short lenses)’라 불리기도 한다. 광각렌즈는 사실상 모든 거리에서 정확한 초점을 유지하기 때문에 딥 포커스 쇼트에 자주 사용되며 이러한 촬영 방식은 사실주의 감독들이 좋아하는 편이다. 또 광각렌즈는 배경의 깊숙한 심도에 있는 대상과 렌즈에서 몇 미터 떨어진 대상을 동일한 포커스로 포착해 시각적 면들의 내적 연관성을 강화하기도 한다.
광각렌즈에서는 선과 공간에서 모두 왜곡이 일어난다. 선과 형상은 앵글이 넓어질수록 더 많이 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영상의 가장자리 부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또 다양한 심도의 면들 사이의 거리를 과장할 수 있기 때문에, 광각렌즈 영상에서는 마치 자동차의 사이드 백미러를 통해 사물을 보는 것처럼 한 걸음 정도 떨어진 두 사람을 몇 미터나 떨어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광각렌즈로 촬영하면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거나 카메라로부터 멀어지는 ‘움직임’ 역시 과장된다. 예를 들어 평범한 사람의 걸음걸이를 마치 거인의 걸음걸이와 같이 만들 수도 있는데 이러한 기술은 특히 특정 인물의 힘이나 권세, 잔인성 등을 강조할 때 더욱더 효과적이다.
가장 극단적인 광각렌즈의 변형인 ‘어안(魚眼) 렌즈(fish-eye lens)’는 마치 수정구슬을 통해 사물을 보는 것처럼 스크린의 측면을 심하게 왜곡한다. 즉 대상이 구면에 반사되어 비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영상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광각렌즈는 심도 면들 사이의 거리를 과장하며, 상징을 담아내는 기술로 유익하게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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