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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촬영기사(1)
영화는 여러 명의 예술가와 기술자, 사업가의 노력이 모여 만들어지는 공동사업이다. 주요 공동작업자인 촬영기사, 작가, 배우는 감독의 세세한 지시와 감각에 따르지만 이러한 감독의 주도는 의무에 따른 것이며 많은 영화에서는 다른 공동작업자들의 개성 또한 뚜렷하게 드러난다. 감독이나 유명 스타가 망친 필름을 실력 좋은 편집자가 맥락이 통하도록 다듬는 경우 등이 그 예시이다.
감독은 연극의 연출자처럼 영상 자체의 촬영상 특성보다는 연기와 대본의 상태에 더 주력하며 시각적 가치보다는 극적 가치에 더 관심을 둔다. 일부 감독은 촬영기사에 앵글과 구도, 렌즈의 선택까지 모두 일임하며 뷰파인더조차 보지 않는다. 하지만 감독이 이렇게 중요한 형식적 요소들을 무시한다면, 이는 영상을 아름답게 표현할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영화계의 거장 히치콕 감독은 ‘스토리 보딩(storyboarding)’ 기법을 사용해 거의 모든 쇼트에 대한 프레임을 촬영기사에 직접 그려 전달했다. 따라서 촬영 기사는 히치콕의 정확한 스케치에 따라 프레임을 구성할 수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히치콕이 직접 뷰파인더를 보지 않아도, 촬영기사가 그의 지시를 따르고 있음을 고려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촬영기사의 역할은 감독이나 영화 자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매우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촬영기사들은 맡은 영화의 분위기와 스토리, 주제에 따라 자신의 촬영 스타일을 맞춰야 하며, 이런 역할을 잘 해낼수록 촬영기사로서 평판을 높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인물에는 윌리엄 다니엘스(William Daniels)가 있다.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의 전속 카메라맨으로도 알려진 다니엘스는 미국의 영화 배급사 ‘엠지엠(MGM)’에서 명성을 떨쳤는데,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Erich von Stroheim) 감독의 거친 사실주의적 영화 '탐욕(Greed)'의 촬영 담당이기도 했으며, 줄스 다신(Jules Dassin) 감독의 세미다큐멘터리 영화 ‘벌거벗은 도시(Naked City)'를 촬영해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했다.
빅 스튜디오 시절 촬영기사들의 목표는 아름다운 사람을 담은 아름다운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영화의 미학적 요소를 극대화하는 것에 주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유연하지 못한 견해로 간주한다. 촬영기사 라즐로 코박스(Laszlo Kovacs) 역시 “구도의 구성 자체만을 위해 구도를 아름답게 꾸미지는 말라.”라고 이야기했듯, 형식은 내용을 구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일례로 빌모스 지그몬드(Vilmos Zsigmond) 또한 ‘서바이벌 게임(Deliverance)’ 촬영 당시, 아름다운 숲이 아닌 험악한 숲을 배경으로 담고 싶어 했다. 그의 영화는 다윈의 진화론을 주제로 다룬 데다 테니슨(Tennyson)이 묘사한 ‘치열한 생존경쟁 속 자연(nature red in tooth and claw)’을 포착하려 했기 때문에 영화에 아름다운 영상은 어울리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의도적으로 흐린 날을 골라 촬영했고 물에 비친 모습이 담기는 것도 피했다. 물에 비친 모습도 자연을 감미롭고 밝게 보이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미국의 촬영기사 고든 윌리스(Gordon Willis)는 로우 키 조명의 전문가이다. 어두운 조명을 선호한 윌리스는 현대영화에도 굉장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대표적으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의 '대부(The Godfather)'를 촬영했는데, 대부분의 전통적인 비평가들은 이 영화가 너무 어둡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윌리스는 의도적으로 대부분의 실내 장면을 아주 어둡게 함으로써 영화에 악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암시했고 시적인 분위기도 강조했다. 또한 윌리스는 관객에게 마피아 두목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의 눈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 그를 훨씬 더 사악하게 볼 것이라 생각해 배우의 눈이 잘 보이지 않게 촬영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이전의 전통적 관습에 반하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많은 영화감독은 로우 키 조명을 소재에 상관없이 그저 더 예술적이고 진지한 조명인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VCR이나 DVD의 포맷으로 TV 화면에서 시청할 때, 필요 이상으로 어두운 영화들은 분간이 어려울 정도의 모호함을 갖는다. 이처럼 필요한 조명 강도는 매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세심한 영화감독들은 영화를 비디오로 변환할 때 직접 감독한다.
이렇듯 최대 관심이 미학적 특성과 촬영 그 자체인 영화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사실주의 감독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스타일을 더욱 좋아한다. 일례로, 형식적 아름다움에는 관심이 없던 루이스 브뉘엘(Luis Buñuel)의 작품들은 촬영의 측면에서는 확실히 전문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채플린의 영화를 촬영한 롤리 토더로(Rollie Totheroh) 역시 카메라를 설치하기만 하고, 나머지는 배우 채플린에게 맡겼다. 즉 촬영 기법이 아닌 연기의 천재성이 영상의 핵심이 된 것이다.
* ‘엘비스 황혼에 지다(This is Elvis)’, ‘트래픽 (Traffic)’, ‘솔저(Soldier)’,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 등 ‘촬영기사’와 관련한 영화의 예시들은 다음 글에서 이어서 설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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