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응형
1-11. 촬영기사(2)
* 오늘은 지난번에 설명했던 ‘촬영기사’와 관련한 영화의 예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촬영기사 관련 설명(촬영기사의 역할, 스토리 보딩, 로우 키 조명의 활용 등)은 이전 글에 있습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영화의 이해 CH 1. 촬영] 1-10. 촬영기사(1)
'엘비스 황혼에 지다(This is Elvis)'와 같은 다큐멘터리는 가끔 바쁘게 서두르며 촬영한다. 촬영 기사는 조명 장치를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영상을 최상의 퀄리티로 포착해야 한다.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는 이동할 수 있는 조명만을 쓰는 고감도 필름과 가장 간편히 휴대할 수 있는 핸드헬드 카메라(handheld camera)를 활용해 촬영된다. 그리고 그 영상은 형식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스러움과 진실성을 통해 평가받는다. 이러한 영상들은 사실 그대로이며 날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에게 더 강한 친밀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 감독의 영화 '트래픽(Traffic)'은 다큐멘터리처럼 촬영되었다. 감독은 거의 자연광을 사용했으며, 자신이 TV 촬영기사인 것처럼 직접 핸드헬드 카메라를 들고 신속히 촬영했다. 소더버그는 관객이 그의 영화를 마치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처럼 느끼기를 원했고 의도적으로 허름하게 연출하는 것 역시 원치 않았다. 다시 말해 연출되어 꾸며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레 포착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세련되거나 능숙한 느낌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또한 관객에게 여러 관점에서 사건을 보여주는 ‘다중적인 내러티브’를 사용했다. 이 영화에서는 3개의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각각의 스토리는 별개의 색, 채도, 대비, 여과 등을 갖고 있어 관객은 영화를 보며 현재 어떤 스토리가 전개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사실주의는 예술 양식의 일종이다. 따라서 영화의 사실주의와 현실 세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사실주의적 감독은 혼란스러운 현실 세계로부터 특정한 소재를 선택해야 한다. 이 소재를 선택할 때는 반드시 어떤 부분을 제거한 뒤, 나머지 요소들을 시각적 중요도에 따라 계층적으로 구성해 부각해야 한다. 얀 트로엘(Jan Troell) 감독의 영화 '이민(The Emigrants)'의 한 쇼트를 보면, 사람보다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전경의 돌담은 사람보다 돌이 더 중요함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 돌담은 극적 맥락에 어울리는 개념인 불화와 배척 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만약 돌담이 영화 주제와 무관했다면, 감독은 돌담 대신 극의 맥락에 더 잘 어울리는 다른 디테일을 선택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촬영 기술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이는 영화에 장점이나 단점을 조금 더 더할 뿐 촬영 기술만으로 영화를 완성하거나 망칠 수 없다. P. J. 호건(P. J. Hogan) 감독의 저예산 영화 '뮤리엘의 웨딩 Muriel's Wedding'은 대부분 자연광을 이용해 야외에서 촬영했는데 이중 주인공 토니 콜렛(Toni Collette)이 등장하는 한 쇼트를 보면 그녀는 키 라이트(key light)를 받고 있음에도 배경이 너무 분주해 영상의 심도 층들이 산만하고 무차별적인 흐릿함으로 압축된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도 주인공의 사랑스러운 연기와 감독의 열정적 연출, 유쾌한 대본 덕분에 이 영화는 세계적으로 흥행한다. 비평가들 역시 찬사를 보냈고 부족한 촬영 기술을 못마땅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화려한 촬영 기술에도 비평가와 대중 모두에게서 외면받은 영화가 있다. 데이비드 테터살(David Tattersall)이 촬영한 폴 앤더슨(Paul Anderson) 감독의 영화 '솔저(Soldier)'는 황홀한 촬영 기술을 통해 극적이고 대담하며 질감이 풍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자 주인공의 몸에 드러난 곡선을 강조하는 양식화된 조명은 조각 같은 몸매에 대한 에로티시즘을 부각했으며, 조명과 함께 촬영한 반짝이는 비 역시 환상적인 수조 분위기의 배경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결국 관객의 외면을 받았고, 이는 멋지게 촬영한 영화만이 모두에게 인정받는 위대한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보여준다.
이상적 종합은 테렌스 맬릭(Terrence Malick) 감독의 영화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감독은 설득력 있는 시적 표현으로 인간의 약점과 타락을 묘사했고, 배우들 역시 가난한 이들의 운명적 취약성을 자신의 체취를 담아 훌륭하게 연기했다. 촬영은 맡은 네스터 알멘드로스(Nestor Almendros) 또한 이 영화를 통해 오스카상을 받았다. 그는 감독이 원하는 잃어버린 낙원, 풍요로운 에덴동산을 암시할 수 있는 세트를 촬영하기 위해 거의 모든 장면을 ‘매직 아워(magic hour)’에 촬영했다. ‘매직 아워’는 촬영기사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황혼을 뜻한다. 이 매직 아워에 촬영된 대상은 측면에서 빛을 받아 금빛 후광에 둘러싸이며 전체 풍경 역시 밝은 홍조를 띠게 된다. 물론 이렇게 하루에 한 시간씩 매직 아워에만 촬영을 진행하면서 그들은 많은 시간과 돈을 쓰게 되었지만, 압도적으로 서정적인 영상과 명성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반응형'영화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의 이해 CH 2. 미장센] 2-2. 프레임(2) (0) 2023.04.12 [영화의 이해 CH 2. 미장센] 2-1. 프레임(1) (0) 2023.04.11 [영화의 이해 CH 1. 촬영] 1-10. 촬영기사(1) (0) 2023.04.10 [영화의 이해 CH 1. 촬영] 1-9. 디지털 혁명(2) (0) 2023.04.09 [영화의 이해 CH 1. 촬영] 1-8. 디지털 혁명(1) (0) 2023.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