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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컬러
영화에서 정교한 색조를 표현하기 위한 기술은 1930년대에 개발되었지만, 이것은 1940년대까지도 상업적으로 보편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색에 대한 수많은 실험은 그전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조르주 멜리에스는 화가들을 시켜 영화 필름을 하나하나 손으로 색칠해보기도 하였고, 그리피스 역시 영화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 원본에서 애틀랜타가 불타는 장면은 붉은색, 야간 신은 푸른색, 야외 러브 신은 연노랑 색을 사용하는 등 항상 색다른 분위기를 내기 위해 여러 색의 원료를 다채롭게 사용했다.
색의 사용은 특히 화려한 사극이나 뮤지컬에서 그 아름다움을 효과적으로 더했기 때문에 초창기의 컬러 영화들은 배경이 보통 이국적이거나 인공적이었으며 색 처리를 통해 화려함이나 요란함을 강조했다. 또 의상과 장식, 분장의 조화로운 색조 구성을 위해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적인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색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색 사용의 보편화를 막는 고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색이 모든 것을 ‘겉치레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과 빨강, 파랑, 노랑의 기본 색상 외에 나머지 색들은 ‘색상 처리가 상당히 왜곡된다’는 것이었다. 색상 처리에 대한 문제는 1950년대에 들어 점차 해결되기 시작했지만, 영화의 색상 처리 기술은 오늘날까지도 실제 사람 눈이 가진 섬세한 색조 지각 능력에 비해 여전히 불완전하다고 평가된다.
영화에서 색은 잠재의식적 요소이다. 강한 정서적 호소력을 통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지적이기보다는 표현적이다. 또 영화 속 작품 구도의 선은 명사를, 색은 형용사를 연상시키는데 이 선과 색은 모두 어떠한 의미를 나타낼 수 있지만 그 표현 방식에 차이를 갖는다. 관객들은 대체로 작품의 ‘선’에 대한 해석에는 적극적이지만, 분위기를 나타내는 ‘색’에 대해서는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시각 예술가들은 초기부터 색상을 상징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색의 상징성은 문화적으로 습득되지만, 색의 함축적 의미는 놀랍게도 서로 다른 모든 사회에서 상당히 유사한 의미로 통한다. 보통 푸른색, 초록색, 보라색 등의 차가운 색은 ‘냉정, 평온, 정숙’을 나타내며 이러한 색조의 영상은 움츠러드는 느낌을 준다. 붉은색, 노란색, 오렌지색 등의 따뜻한 색은 ‘폭력성, 공격성, 흥분 상태’ 등을 암시하며 이러한 색의 영상은 앞으로 나오는 느낌을 준다. 이 중에서도 특히 ‘붉은색’은 주로 섹스, 성적 욕망과 관련이 있는데 이 붉은색이 성적 욕망을 매혹적으로 표현하는지, 아니면 혐오감과 불쾌감을 조성하는지는 극의 맥락에 달려있다. 이뿐만 아니라 붉은색은 피의 색깔로 위험과 폭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감독들은 종종 냉혹하거나 엄숙한 소재를 표현하기 위해 명랑한 느낌을 주는 밝은 색의 사용을 줄인다. 일례로 1870년대 뉴욕 상류사회의 금지된 사랑을 다룬 영화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에서는 영상들이 마치 낡은 사진처럼 암갈색으로 탈색된 모습이다. 이 영화에서 색은 아주 고상하게 절제되고, 단정하며, 억압되어 있다. 이는 사회의 보수적 가치를 투영한 것이기도 하다.
컬러 영화에서 흑백 촬영은 종종 상징적인 목적을 갖는다. 어떤 감독은 컬러로 촬영한 시퀀스와 흑백으로 촬영한 에피소드를 번갈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렇게 갑작스러운 흑백 시퀀스는 예술적이면서도 너무 뻔한 느낌이다. 흑백을 전보다 더욱 부각하기만 해도, 다시 말해 색의 가짓수를 줄이기만 해도 이는 효과적인 변형이 된다.
이러한 변형을 효과적으로 적용한 대표적인 예시에는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의 영화 ‘핀지 콘티니스의 정원(The Garden of the Finzi-Continis)’이 있다. 이 영화는 파시스트의 통치 아래 있던 이탈리아가 배경으로, 영화 초반부는 황금색, 붉은색, 다양한 농도의 녹색 등이 사용되어 아주 화려한 느낌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가혹해지는 정치적 억압에 따라 이러한 색들은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사라지고 결국 영화의 끝 무렵에는 흰색과 검은색, 청회색만이 지배적인 것을 볼 수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에서도 마찬가지의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지중해의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며, 밝고 따뜻한 색상과 함께 슬랩스틱 코미디로 시작한다. 하지만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 남부까지 확산함에 따라, 영웅으로 등장하는 이탈리아계 유대인 ‘베니니’가 결국 독일의 강제수용소로 보내지면서 영화의 색깔도 함께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사실상 수용소 안 장면에서는 거의 모든 색이 사라지며 가끔 보이는 빛바랜 피부 톤의 빛만이 수용소와 죄수들의 창백함과 어두움을 강조한다.
1980년대에는 새로운 컴퓨터 기술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은 기존의 흑백영화를 ‘컬러’로 바꾸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는 많은 영화예술가와 비평가들로부터 거센 저항을 받았다. 뮤지컬이나 시대극, 가벼운 오락물 등과 같은 일부 장르의 영화들은 흑백을 컬러로 바꿔도 심한 손상이 없었지만, 섬세한 딥 포커스 촬영 방식과 필름 누아르 조명 스타일을 가진 영화 ‘시민 케인(Citizen Kane)’처럼 공들여 촬영한 흑백영화에 색을 입히는 시도는 아주 참혹한 반응을 낳았다.
컬러 자체를 바꾸는 것은 쇼트가 가진 구도상의 균형을 깨트리며, 새로운 극적 대비를 만들기도 한다. 영화 ‘다크 빅토리(Dark Victory)’에는 남자 주인공 브렌트가 여자 주인공 데이비스에게 “나에게 지금 진실을 말해주세요. 당신은 이 옷의 색깔이 너무 푸르다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푸르지는 않지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컬러 버전에서 이 쇼트의 지배적인 요소는 ‘브렌트의 푸른색 정장’인데, 사실 이것은 극의 맥락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원래의 흑백 버전에서는 ‘데이비스’가 지배적인 요소였고, 특히 그녀의 검은색 의상은 하얀색 벽난로와 대비를 이뤄 그녀의 윤곽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시각적인 극적 대비를 흐트러뜨리면 이런 신의 극적 효과는 약해진다. 관객은 브렌트의 정장 색깔이 분명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컴퓨터로 컬러를 입혔을 때만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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