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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구도와 디자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균형을 맞추고 그 균형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영화에는 늘 예외가 존재한다. 불균형 상태를 강조하려는 시각예술가는 의도적으로 고전적 구도의 표준적인 관습을 깨뜨린다. 또 영화에서는 ‘극적 맥락’이 구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표면상으로는 깔끔하지 못한 구도라도 심리적 맥락을 고려했을 때는 굉장히 효과적인 구도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신의 부조화를 겪는 주인공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인물을 고의로 영상의 중앙이 아닌 가장자리에 배치하는 경우 등이 있다. 이처럼 감독은 시각적 균형을 무시함으로써 극적 맥락에 더 적합한 심리적 이미지를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다.
사람의 눈은 구도 안의 여러 요소를 본능적으로 조화시켜 보려는 습성이 있다. 따라서 복잡한 구성을 가진 디자인도 유사한 색이나 형태, 구조를 무의식적으로 연결하며 다양한 요소들을 질서 있는 패턴으로 통일해 인식한다. 이러한 구성요소는 7개 또는 8개까지 동시에 인지될 수 있다. 또 사람의 눈은 영상의 이곳저곳을 그저 훑어보는 것이 아니라, 시퀀스 속의 특정한 영역에 시선을 쏟는다. 따라서 감독은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대비인 ‘극적 대비(dominant contrast)’를 사용해 이러한 눈의 특성을 이용한다. 극적 대비는 사람의 시선을 직접적으로 끄는 영상의 영역으로, 영상 안의 다른 요소들과 무시가 불가능할 정도의 명확한 대비를 이뤄 화면에서 혼자 동떨어진 것처럼 유난히 눈에 띄는 부분을 말한다. 흑백 영화의 극적 대비는 보통 ‘명암의 병치’로부터 만들어지는데, 만약 감독이 관객에게 배우의 손을 얼굴보다 우선해 보여주고 싶다면 손에 비춘 조명을 얼굴 조명보다 강하게 조정하는 방식이다. 색채 영화의 극적 대비는 특정한 색을 다른 색보다 튀어 보이도록 조정해 만들어낸다.
관객은 이러한 극적 대비를 보고 난 후, 시선을 ‘보조적 대비(subsidiary contrast)’로 옮기게 된다. 보조적 대비는 극적 대비의 효과를 보완한다. 이 과정에 자의식을 가진 영화예술가들은 고의로 특정한 시퀀스가 이어지도록 영상을 구성해, 관객이 시선을 둘 순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
영상에서의 극적 관심과 극적 대비의 시각적 관심은 대부분 상통한다. 하지만 영화에는 극적 맥락과 시간적 맥락이 함께 있기 때문에, 움직임 자체가 극적 대비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것은 ‘본질적 관심사(intrinsic interest)’라 하며, 관객이 이야기의 흐름을 통해 특정 대상이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극적으로 더 중요함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총’이라는 소품이 영상에서 작은 면적만을 차지한다고 해도, 그것이 극적으로 중요함을 관객이 알고 있다면 시각적으로는 사소해도 지배적인 성격을 갖는 본질적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또 영상에 주요 구성요소가 8개 또는 9개 이상인데, 영상을 탐색할 여유로운 시간마저 없다면 관객은 시각적 혼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전쟁 장면과 같이 시각적 혼란이 의도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경우 감독은 해당 구도에 여러 요소를 과도하게 많이 넣는다.
한편 시각예술가는 구성요소를 자주 무게에 비유해 말한다. 그리고 구도에는 본질적으로 무게감의 차이가 존재한다. 위치에 따라 더 가볍고 무거운 무게를 갖는 곳이 있는 것이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ölfflin) 역시 사람들이 구성요소 간 비중이 같을 때 그림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고전적 구도에서는 영상 오른쪽의 무게를 중화하기 위해 왼쪽 부분을 더 무겁게 만든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더불어 구도의 오른쪽 부분이 왼쪽보다 무거운 것처럼, 구도의 윗부분 역시 아래쪽보다 더 무겁다. 오벨리스크(Obelisk), 마천루, 원주는 이런 구도적 특성이 반영된 대표적인 건축물로,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모양은 꼭대기가 무거워 보이지 않도록 한다. 스크린에서도 마찬가지로 무게중심을 낮춰야 비중이 아래쪽으로 향해 영상을 더 균형 있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에이젠슈테인(Eisenstein), 포드(Ford) 등 서사적 감독들은 오히려 불안정한 구도를 역으로 이용해 특정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일례로 하늘이 그 고유의 무게로 화면을 지배하도록 해 땅과 땅에 있는 사람들이 하늘의 무게에 압도당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또 여럿이 함께 모인 것보다는 고립되어 있는 대상이 더 무거운 느낌을 주는데, 영화에서 적대적 무리와 떨어져 있는 주인공이 수적 차이에도 대등해 보이는 것은 이 같은 고립이 나머지 무리 전체와 균형을 맞춰주기 때문이다.
특정한 선은 운동방향을 나타낸다. 시각적으로 선 자체는 정지된 것처럼 보여도, 일단 움직임이 감지된 수직 선은 아래에서 위로, 수평 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사선이나 대각선은 훨씬 역동적이고 가변적인 느낌이다. 극적 맥락만으로는 감정표현이 충분치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심리적 현상을 이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일례로 감독은 선을 역동적으로 이용해 조용한 맥락 속에 있는 인물의 내적 흥분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데, 영상을 사선으로 구성하는 것만으로 어떠한 극적 행동 없이 인물의 내적 불안을 가시화할 수 있다.
많은 예술가들은 시각적 구도에 있어 S와 X형태, 원형과 삼각 디자인을 선호한다. 이 디자인들은 아름다움을 가진 형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 시각예술가는 특정한 구성형식을 사용해 어떠한 상징을 강조하기도 한다. ‘병행’이 강조되는 ‘이원적 구도(binary structure)’, 즉 거의 모든 2인 쇼트(two shot)는 한 쌍 또는 두 대상이 한 공간에 있음을 암시한다. ‘삼원적(Trialic) 구도’는 이름처럼 3가지 핵심 요소 간 역동적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원형구도는 둘러싸인 모습, 안전성, 여성적 원리 등을 암시한다.
이렇게 영화에서의 주제와 디자인은 떼어놓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에 있다. 일례로 ‘줄 앤 짐(Jules and Jim)’의 감독 또한 계속 변하면서도 늘 연결된 3인의 관계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줄곧 삼각구도를 사용했다. 영상의 형식을 통해 영화의 주제인 삼각관계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보통 이런 3, 5, 7 단위의 디자인은 시각적 요소를 활성화시키며, 불균형을 유지하면서도 변화를 촉진한다. 2, 4, 6 단위의 디자인은 비교적 안정된 균형과 정적인 분위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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