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4. 15.

    by. pearls of wis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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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영토 공간

     

     영화감독은 시각적 요소를 구성할 때 공간적 고려사항도 체크해야 한다. 영상은 깊이와 부피의 환영을 다루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감독은 평면적이고 추상적인 모습의 구도를 피하기 위해 영상에서 부피를 강조하며, 3가지의 시각적 면인 전면’, ‘중간면’, ‘후면’, 전경’, ‘중경’, ‘원경위에 이를 구성한다. 이는 깊이감의 표현에 도움을 주고 특정 대상을 두드러지거나 미세하게 만드는 등 갖가지 특성을 부여하는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중경에 위치한 인물에 대해 전경의 요소들은 해당 인물을 보조적으로 나타내려는 경향이 있는데, 일례로 전경의 엷은 커튼은 신비감과 에로티시즘을, 나뭇잎 무늬는 자연과의 융화 및 자연스러움을, 엇빗금무늬 창틀은 자아분열을 표현한다.

     

     감독은 소재를 어떤 쇼트로 촬영할지에 관해서도 결정해야 한다. 즉 카메라를 피사체에 얼마나 근접하게 둘 것인지, 프레임에 얼마나 많은 디테일을 넣을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프레임을 차지하는 공간의 양은 촬영 소재에 대한 관객의 반응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감독은 다양한 쇼트를 사용해 주어진 소재를 촬영할 수 있으며, 각 쇼트는 일정량의 주변 공간을 포함하거나 배제할 수 있다.

     

     우리는 각 개체가 차지한 영토의 면적을 통해 힘의 공간적 위계질서를 파악할 수 있다. 지배적인 생물일수록 더 넓은 공간을 갖고, 힘이 약한 피지배적 생물일수록 무리를 지어 함께 산다. 즉 한 생물이 소유한 공간의 크기는 그 공간에서 누리는 지배력과 힘에 비례한다. 이러한 공간의 원리는 인간 사회 내에서도 흔히 발견되는데, 사람이 사용하는 영토 공간의 구조는 보통 단번에 알아볼 정도로 권력적인 성격을 띠며 많은 이들이 이러한 공간적 관습에 길들어 있다. 정신없고 붐비는 공간에서, 한 저명한 인물을 위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길을 빠르게 터주며 그들 자신이 차지한 공간보다 해당 인물에게 훨씬 더 많은 공간을 제공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모든 현상은 영화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영화에서 공간은 주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등장인물들의 심리, 사회적 관계에 관한 여러 정보를 공간 배열 방식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화에서 지배적 인물은 거의 항상 다른 인물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며, 그 소유된 공간의 크기는 인물의 사회적 권세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 지배는 늘 현실 세계와 같지만은 않고, 영화의 맥락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보통 왕처럼 권위적인 인물이 농민들보다 훨씬 넓은 공간을 갖지만, 농민이 주인공인 영화에서는 농민이 공간을 더 많이 지배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에서 프레임은 일종의 영토로, 감독은 공간적 관습을 이용해 다양한 인간관계를 규정하고 수정하며 조종한다. 또 카메라 설정의 변경만으로 다른 소재를 향해 계속 전진할 수 있다. 더불어 감독은 카메라와 인물이 마주 보는 방향, 인물들 사이 공간, 프레임의 영역별 무게 차이, 영상 내 면면의 깊이 등을 이용해, 한 쇼트만으로도 변화하는 사회, 심리적 뉘앙스를 나타내는 것이 가능하다.

     

     배우가 촬영되는 기본적인 자세에는 5가지가 있고, 모든 자세는 각각 다른 심리적 기조를 전한다. 5가지 자세에는 카메라를 마주 보는 자세인 완전 정면 자세(full front)’, ‘1/4 정도 몸을 돌린 자세(the quarter turn)’, ‘측면 자세(profile-looking off frame left or right)’, ‘3/4 정도 몸을 돌린 자세(the three-quarter turn)’, 그리고 카메라와 등진 자세(back to camera)’가 있다. 관객은 배우의 자세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갖게 되는데, 배우의 얼굴을 많이 보게 될수록 관객은 배우에게 더욱 큰 친밀감을 느낄 수 있고, 적은 부분을 보게 될수록 신비롭고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 들게 된다.

     

     배우들은 보통 카메라를 무시함으로써 관객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완전 정면 자세(full front)’의 인물은 관객 쪽을 보며 동조를 요구하기 때문에 가장 친밀한 느낌을 준다. 등장인물이 관객의 존재를 의식하며 카메라에 말을 걸면 관객과 아주 큰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다. ‘1/4 정도 몸을 돌린 자세(the quarter turn)’는 굉장히 친근하고 자상한 느낌을 주면서도 완전 정면 자세보다는 정서적 연대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감독이 선호한다. 측면 자세(profile-looking off frame left or right)’의 인물은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여 친근감이 더욱 떨어진다. ‘3/4 정도 몸을 돌린 자세(the three-quarter turn)’는 익명적이고 개성이 가려지는 자세로, 해당 인물은 관객의 관심을 거부하며 관객에 부분적으로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물의 반사회적이고 비우호적인 감정을 전달하기 좋다. 카메라와 등진 자세(back to camera)’인 인물을 보는 관객은 그 인물의 내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밖에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자세는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미스터리하고 은폐적인 느낌을 전달하기 좋고, 세상에서 소외된 인물을 나타낼 때 자주 사용된다.

     

     프레임의 영토 안 열린 공간의 크기는 상징적인 목적으로도 사용된다. 근접한 거리에서 촬영된 쇼트, 즉 꽉 찬 프레임에 있는 인물들은 갇혀 있는 느낌이, 느슨하게 멀리서 촬영한 쇼트에 있는 인물들은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감옥이나 감금을 주제로 한 영화는 보통 꽉 찬 프레임의 클로즈업과 미디엄 쇼트를 사용하는데, 이런 식의 공간적 메타포와 프레이밍 자체가 상징적인 감옥의 기능을 한다.

     

     프레임 내 영토는 심리적으로 복잡한 내용을 조종할 수 있는데, 일례로 인물이 프레임을 떠날 때 카메라를 패닝 하여 구도 내 갑작스러운 공백과 무게의 불균형을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고, 한때 인물이 차지했던 공간의 공백을 그대로 보여주면 상실의 느낌을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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