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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움직임
영화를 뜻하는 말에는 ‘movies’, ‘motion pictures’, ‘moving pictures’가 있다. 이 단어들에서 유추할 수 있듯, 영화 예술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영화를 볼 때, 관객이나 비평가가 움직임 자체를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눈여겨보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영화에서의 움직임도 미장센처럼 전체 주제의 맥락에서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3-1. 역동성
움직임은 구체적이고 엄밀한 것부터 서정적이고 양식화한 것까지 그 스타일의 범위가 넓다. 따라서 관객은 사실적인 움직임부터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움직임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움직임을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와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은 상반된 몸짓 사용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 윌리스 같은 자연주의 배우는 실제 생활에서의 모습과 거의 유사한 사실적인 몸짓만을 사용하며 그 움직임이 너무 소박해 연기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채플린 같은 팬터마임 배우들의 몸짓은 훨씬 양식화되어 있다. 그는 마치 발레를 하는 것처럼 몸짓을 굉장히 상징적으로 사용하는데, 특히 으스대는 걸음과 빙빙 돌리는 지팡이를 통해 표현되는 그의 오만하고 거만한 태도는 그의 시그니처 중 하나이다.
뮤지컬 배우의 움직임은 다른 장르들보다도 더 양식화한 모습이다. 특히 ‘춤’이라는 것은 어떤 감정이나 생각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양식화한 관습의 전형이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잘 없다. 쿵후 또는 사무라이 영화와 같은 액션 장르도 정밀히 구성된 격투 시퀀스 등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움직임을 양식화한다. 발레와 마임은 더욱더 양식화되고 추상적인 모습을 갖는데, 이 같은 추상적인 움직임들은 서정적인 느낌을 주며 관객들 역시 움직임의 상징적 기능보다는 움직임 자체의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3차원의 무대가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을 한정하는 것처럼, 영화 영상의 공간은 프레임이 한정한다. 움직임은 프레임 내 위치가 갖는 전통적인 의미들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데, 위쪽으로 올라가는 움직임은 프레임의 상위 부분과 연결되며 권위, 권력, 환희, 포부 등을 암시한다. 반대로 아래를 향해 내려가는 움직임은 죽음, 불경기, 허약함, 비애, 무의미 등을 의미한다.
사람의 눈은 물체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이와 같은 방향성을 가진 물체의 움직임은 심리적으로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와 반대로 가는 움직임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느낌이다. 영화감독들은 이러한 심리적 현상을 이용해 극적 아이디어를 부각하곤 한다.
움직임은 카메라에서 멀어질 수도, 카메라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이는 등장인물이 관객을 향해 멀어지거나 가까이 다가가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특히 카메라를 향해 걸어오는 등장인물이 악당인 경우, 이는 악당이 관객의 공간으로 침입하는 듯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 동작은 위협적이고 공격적이며 악의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매력적인 인물이 움직이는 경우에는 다정한 호감 또는 유혹적인 느낌이 들게 된다.
움직임의 심리적 함축은 감독의 촬영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스크린에서 심도의 움직임(카메라로부터 멀어지거나 카메라를 향한 움직임)과 측면의 움직임 사이에는 아주 큰 심리적 차이가 존재한다. 심도 안팎으로 움직이는 인물은 주로 느림의 효과를 갖지만, 오른쪽에서 왼쪽 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등 측면으로 이동하는 인물은 능력 있고 결단력 강한 인물로 보이며 그 능률과 스피드가 강조돼 액션영화에서 특히 자주 볼 수 있다.
움직임의 의미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촬영되는 거리와 앵글이다. 높거나 먼 곳에서 찍은 쇼트는 느린 움직임을, 가까운 곳에서 낮은 앵글로 잡은 쇼트는 강하고 속도감 있는 움직임을 나타내기 좋다. 같은 인물도 하이 앵글의 익스트림 롱 쇼트로 촬영하면 무능하고 무력해 보이지만, 로우 앵글의 미디엄 쇼트로 촬영하면 활발한 정력가로 보인다. 이처럼 쇼트 안의 진정한 내용은 그 쇼트의 형식을 통해 파악할 수 있으며, 소재 자체보다는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중요하다.
영화에서의 움직임은 쇼트의 종류에 따라 좌우되는데, 심리 영화와 서사 영화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움직임을 사용하고 서로 다른 쇼트를 강조한다. 먼저 심리 영화는 보통 클로즈 쇼트를 사용하고 영상의 깊이와 디테일에 중점을 두며 사건의 함축적 의미와 행위의 반응(reaction)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서사영화는 서사적 효과를 위해 주로 롱 쇼트에 의존하고 웅장하거나 통쾌한 느낌에 중점을 두며 사건 자체와 행위 작용(action)을 강조하는 편이다.
역동적인 상징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식상함을 피하는 좋은 방법이다. 또 추상적인 움직임이라도 특정한 생각과 느낌을 충분히 암시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감독도 안무가처럼 움직임 속에 담긴 의미를 탐구해 표현해야 한다. 움직임은 부드럽고 유연한 느낌을 줄 수도, 공격적이고 거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대체로 곡선의 움직임은 우아함을, 직선의 움직임은 강렬함을 나타낸다. 또 황홀감과 기쁨은 주로 팽창하는 움직임을 통해 전달되지만, 공포감은 다양한 형태의 망설임과 떨리는 움직임을 통해 표현된다. 에로티시즘은 물결치는 움직임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데, 일례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을 보면 여주인공의 도발적이고 성적인 매력은 그녀의 물결처럼 움직이는 실크 면사포를 통해 암시된다. 그 우아한 움직임은 남자 주인공 미후네 도시로를 에로틱하게 유혹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보통 일본인 관객들은 영화에서의 노골적인 성적 묘사는 감칠맛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 영화에는 키스 장면도 잘 나오지 않으며, 성적인 느낌은 이처럼 상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 실험적인 감독들은 의도적으로 영화의 본성에 반하는 방향을 추구하며, 필수적인 부분 외의 모든 움직임은 버린 채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다. 움직임의 최소화를 추구한 대표적인 감독에는 브레송(Bresson), 오즈(Ozu), 드레이어(Dreyer)가 있는데, 이들은 굉장히 제한되고 엄격한 테크닉을 기반으로 움직임을 다뤘다. 모든 대상이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영상의 경우에는 아주 작은 움직임도 매우 큰 의미를 지니게 되며, 이러한 정지는 대부분 상징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된다. 일례로 안토니오니(Antonioni)의 영화에서는 움직임의 부재를 통해 정신적, 심리적 마비 상태를 암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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