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응형
3-3. 움직임의 기계적 조작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움직임은 일종의 착시이다. 현대의 카메라는 움직이는 물체를 초당 24 프레임으로 녹화하는데, 이는 1초에 24장의 스틸 사진을 찍는 것과 같다. 따라서 필름을 일정한 속도로 영사하면 관객은 마치 정말 움직이는 대상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시현상인 ‘잔상(persistence of vision)’을 보게 된다. 영화감독은 카메라나 영사기의 속도 조절 장치를 조절해 움직임과 스크린을 조작할 수 있다. 이 같은 기계적인 조작법에는 대표적으로 ‘애니메이션(animation)’, ‘패스트 모션(fast motion)’, ‘슬로 모션(slow motion)’, ‘역동작(reverse motion)’, ‘정지화면(freeze frame)’의 5가지가 있으며, 대부분 조르주 멜리에스가 발견했다.
‘애니메이션(animation)’과 ‘라이브 액션 영화’에는 2가지 차이점이 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1초에 24 프레임을 연속적으로 촬영하지 않고 각 프레임을 개별적으로 촬영하며, 스스로 움직이는 피사체가 아닌 정적인 사물이나 그림을 촬영한다. 각각의 프레임은 앞뒤로 연결되는 프레임과 분명 다른 모습이지만, 차이가 거의 미세하여 초당 24 프레임으로 영사되면 마치 대상이 움직이는 듯한 착시가 일어나고 관객은 결국 이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도 라이브 액션 영화처럼 줌, 트래블링 쇼트, 디졸브, 다양한 앵글과 렌즈, 편집 기술들이 사용될 수 있다. 애니메이터들은 이 모든 기술들을 직접 그려서 영상화하며, 여러 종류의 펜, 연필, 물감, 파스텔, 아크릴 등을 활용해 화가로서의 기술 또한 적용해 낼 수 있다.
초당 24 프레임보다 더 느린 속도로 사건을 촬영하면 ‘패스트 모션(fast motion)’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느리게 촬영한 시퀀스를 초당 24 프레임으로 영사하면, 가속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빠르게 달리는 말이나 자동차를 보여주는 장면 등, 원래 촬영한 것보다 더 올라간 속도를 보여주고자 할 때 자주 활용된다. 패스트 모션은 코믹한 효과를 줄 수도 있다. 프랑스 미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에 의하면, 사람이 유연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부자연스러운 기계처럼 움직이면 코미디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즉 사람들은 융통성 없고 기계적인 행동에서 우스운 감정을 느끼며, 행동이 기계적이라고 정의되는 데 중요한 한 가지 특징은 ‘속도’인 것이다. 사람의 움직임을 빠른 속도로 보여주면 인간다운 모습이 사라지고 우스운 느낌이 든다. 따라서 패스트 모션으로는 품격 있는 태도를 나타내는 것 역시 힘들다.
초당 24 프레임 이상의 빠르기로 촬영한 필름을 표준속도로 영사한 것이 ‘슬로 모션(slow motion)’이다. 슬로 모션에서의 움직임은 품위 있고 우아한 안무처럼 느껴진다. 이 진지한 분위기의 의례화된 움직임은 위엄 있고 느린 템포의 비극에 잘 어울린다. 하지만 격렬하고 난폭한 장면을 슬로 모션으로 촬영하는 경우에는 아름다운 느낌을 만들 수도 있다.
‘역동작(reverse motion)’은 액션을 촬영할 때 필름을 역으로 돌리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 기술은 조르주 멜리에스 감독 이후 단순한 개그의 수준을 넘어 크게 발전하지는 못했다. 한편 장 콕토(Jean Cocteau) 감독은 영화 ‘오르페우스(Orpheus)’에서 역동작과 슬로 모션을 결합해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아내를 되찾기 위해 지옥으로 간 주인공 ‘오르페우스’는 지옥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이를 다시 바로잡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는 정말 과거로 순식간에 돌아가, 운명의 결정을 내렸던 시간과 장소에 도착한다. 이 시퀀스에 나타난 슬로 모션은 영화에서 시간이 공간화되고 공간이 시간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정지화면(freeze frame)’은 스크린 위 모든 움직임이 일시 정지되는 것이다. 한 영상을 선택해 필요한 만큼 그 영상의 프레임을 리프린트 하여 동작의 정지를 표현한다. 정지화면은 주제 의식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리처드슨 감독의 영화 ‘장거리 주자의 고독(The Loneliness of the Long Distance Runner)’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감독은 주인공의 상태가 변함이 없음을 끝까지 강조하기 위해 영화가 마무리되는 막판에 이르러서도 주인공을 정지 처리해 보여준다.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 정지 영상은 시간을 다루기에도 이상적인 메타포이다. 조지 로이 힐(George Roy Hill) 감독의 서부극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에서, 주인공인 폴 뉴먼(Paul Newman)과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의 총살 직전 장면은 정지되어 나타난다. 감독은 이를 통해 선명한 죽음의 메타포를 보여주고 죽음을 넘어선 진정한 승리를 표현했다.
관객은 영화를 관람할 때, 왜 한 신 안에서 카메라가 이동하거나 하지 않는지, 감독이 카메라를 행위 대상과 가까운 위치에 배치해 동작을 강조하고 있는지, 움직임이 양식화되어 있는지, 자연스러운지, 날 것 그대로인지, 상징적인지, 카메라 움직임이 급변하는지, 부드러운지, 하이 앵글과 롱 쇼트, 느린 속도의 액션을 통해 움직임의 의미를 가볍게 만드는지, 애니메이션이나 패스트 모션, 슬로 모션, 정지화면과 같은 기계적 조작은 어떤 상징을 내포하고 있는지 등, 여러 가지 물음을 던져보아야 한다. 감독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고, 움직임의 형식에 따라 각기 다른 암시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움직임의 형식은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응형'영화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의 이해 CH 4. 편집] 4-2. 그리피스와 고전적 편집 (0) 2023.04.25 [영화의 이해 CH 4. 편집] 4-1. 연속성 (0) 2023.04.23 [영화의 이해 CH 3. 움직임] 3-2. 카메라 이동 (0) 2023.04.19 [영화의 이해 CH 3. 움직임] 3-1. 역동성 (0) 2023.04.18 [영화의 이해 CH 2. 미장센] 2-7. 열린 형식과 닫힌 형식 (0) 2023.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