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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그리피스와 고전적 편집
그리피스 감독은 기본 요소만 활용되던 편집 신택스(editing syntax)에 섬세함과 힘을 불어넣어, 오늘날 ‘고전적 편집’이라 불리는 테크닉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피스는 이전의 영화인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기술들을 확장하고 통합하는 과정을 통해, 편집을 간단한 트릭 수준이 아닌 예술의 경지로 진입시켰다. 또한 그리피스는 편집이라는 개념 안에서 ‘관념의 연합’이라는 원리를 발견해, 이를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하기도 했다. 더불어 그리피스는 최초로 클로즈업을 단순한 물리적 이유를 넘어 심리적 테크닉으로 활용하며, 배우의 표정에 표현되는 섬세한 변화를 세밀히 나타냈다. 그리피스는 액션을 일련의 조각난 쇼트로 나눠, 디테일을 더 세심하게 표현하고 관객의 반응 또한 효과적으로 통제했다. 클로즈 쇼트, 미디엄 쇼트, 롱 쇼트 등을 섬세하게 선택해 연결했고, 한 장면 안에서도 시점을 끊임없이 바꾸며 현장 안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이는 곧 ‘주관적 연속성’, 즉 이어지는 쇼트에 함축된 관념과의 결합으로 대체됐다.
카메라를 롱 쇼트 거리에 배치하고 싱글 쇼트로 촬영하는 것을 ‘마스터 쇼트(master shot)’나 ‘시퀀스 쇼트(sequence shot)’라 한다. 고전적 편집은 이러한 쇼트보다 더 작위적이고 풍부한 뉘앙스를 가지며, 공간의 통일성을 무너뜨리고 각 구성요소의 디테일에 관객의 시선을 모은다. 행위 역시 실제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기보다는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또 세련된 형식의 고전적 편집에서는 실제 시공간과 반드시 분리되지 않아도 되는 쇼트, 다시 말해 심리적으로 연결된 연속 쇼트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쇼트의 시퀀스는 대체로 심리적인 인과관계의 패턴을 묘사한다. 또 이 같은 쇼트를 분할할 때는, 필연성이 아닌 극을 기반으로 할 때 정당화하기가 용이하다. 특히 영화이론가 레이먼드 스포티스우드(Raymond Spottiswoode)에 의하면, 커팅은 반드시 ‘내용 곡선(content curve)’의 정점, 즉 쇼트 내에서 관객이 가장 많은 양의 정보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내용 곡선의 정점 이후에 이루어진 커팅은 지루한 느낌을 주고, 정점 이전에 이루어진 커팅은 관객이 시각 정보 충분히 소화하는 데 무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피스를 포함한 여러 고전주의 감독들은 다양한 편집 관습을 만들며, 편집 자체에 주의가 집중되지 않도록 하거나 아예 눈에 띄지 않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때 개발된 기술 중 하나가 ‘시선 일치’, 즉 ‘아이라인 매치(eyeline match)’이다. 촬영 시 인과관계를 고려하여, 프레임 밖 왼편을 바라보는 인물 A를 통해 또 다른 인물 B가 인물 A의 왼쪽에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행위 일치’, 즉 ‘매칭 액션(matching action)’ 역시 고전적 편집의 또 다른 관습이다. 예를 들어 인물 A가 앉아 있다 일어나기 시작하는 장면을 보여줄 때, 일어나는 행위와 일어나서 자리를 떠나는 행위를 각각 다른 쇼트로 커트하는 것이다. 눈에 띄지 않는 부드러운 연결을 통해 커트를 숨긴다면 인물의 동작은 끊어짐 없이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행위가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듯 보인다. 또 여전히 많은 감독은 관객의 혼란을 막기 위해 연기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고정해 버리는 ‘180도의 법칙’을 지키고 있다. 장면 중앙에 가상의 ‘행위 축(axis of action)’을 그리고 촬영하는 방식인데, 카메라는 배경의 통일성과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물의 클로즈업 신을 촬영할 때 인물과 180도 선의 같은 쪽에 있어야 한다. 이 관습은 편집과 미장센을 모두 포함한다.
그리피스는 현대 영화에 굉장히 자주 쓰이는 ‘추적의 관습’도 완성했다. 그리피스의 영화들은 거의 늘 추적과 함께 최후 순간의 구출 시퀀스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시퀀스에는 보통 한 장면의 쇼트와 다른 장소의 쇼트를 교대로 연결하는 ‘평행편집(parallel editing)’이 들어간다. 그리피스는 두 개 이상의 장면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보여주는 교차편집을 통해, 사람들에게 ‘동시에 존재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전달했다. 영화에서는 공간의 처리보다 시간의 처리가 훨씬 더 주관적이다. 영화는 몇 초를 몇 분으로 늘리거나, 몇 년을 몇 시간으로 압축한다. 영화 속에서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과 실제 소요 시간을 일치시키는 영화는 거의 없다.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영화에서 표현하는 시간이 곧 법이다. 시간은 거의 불확실한 상태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관객의 몰입 여부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능력 있는 감독들은 작품을 직접 편집하거나 편집자들과 긴밀히 협력해 작업하는데, 민감하고 매끄러운 시간 처리는 대개 기계적 법칙이 아닌 직관적인 편집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리피스의 가장 급진적인 편집 스타일 실험은 영화 ‘인톨러런스(Intolerance)’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주제적 몽타주(thematic montage)’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적용해 낸 극영화이다. 주제적 몽타주는 시공간의 연속성에 개의치 않고, 관념들의 결합에 초점을 두는 기법을 말한다. 그리피스는 ‘박해’와 ‘편협’이라는 주제로 구성된 영화 ‘인톨러런스’에 4가지 이야기를 삽입했다. 첫 번째는 고대 바빌론에서 일어난 이야기, 두 번째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 세 번째는 16세기 프랑스 가톨릭 왕당파의 위그노 대학살 이야기, 네 번째는 1916년 미국의 노사갈등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피스는 이 4가지 이야기를 분리하지 않고 평행하게 나열하는 방식으로 전개하며 한 시대의 장면들을 다른 시대의 장면들과 ‘간격편집(intercutting)’하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파생된 모든 이미지는 ‘편협(intolerance)’이라는 핵심 주제로 모인다. 이뿐만 아니라 그리피스는 ‘판타지 인서트(fantasy insert)’도 사용해 영화 내 시공간을 재구성했는데, 아이디어를 단순히 시간순으로 전개하는 것이 아닌 주제적으로 전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피스는 모티프의 반복, 동시성, 장소 전환, 시점이동, 시간 추이, 쇼트 변형, 신체 및 심리적 디테일 강조, 상징적 인서트, 연상, 병행과 대조 등 다양한 편집 기능들을 발굴해 내며, 소박한 수준에 그쳤던 초기의 편집 기술을 보다 광범위하고 다양한 기능이 겸비된 편집예술로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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